우리는 끊임없이 '효율'과 '성장'을 강요받는 사회를 살아가지만, 정작 우리 삶의 근간이 되는 자연과 생태계의 목소리에는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속도전만이 미덕이 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생물학자이자 초대 국립생태원장을 지낸 최재천 교수(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의 저서 <<히스토리아 비테이>>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던진다.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국내에 '통섭(Consilience)' 개념을 뿌리내린 저자의 예리한 시선을 통해, 46억 년 지구 역사가 증명하는 진짜 생존의 법칙을 파헤쳐 보자.
1장: 동물도 경제학을 하고 거짓말을 한다.

초반부에서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을 통렬하게 깨부순다. 흥미롭게도 책에서는 동물이 단순히 본능에만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는 생생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 동물들도 먹고살기 위해 치열한 '동물 경제학'을 구사하며, 심지어 생존을 위해 영악한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생태계를 바라볼 때, 인간의 잣대로 우등과 열등을 나누는 순간 자연이 건네는 진짜 메시지를 놓치게 된다."
- 식물과 동물의 재발견: 동물이 식물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을 깨고, 각자의 방식으로 지구라는 환경에 적응해 온 유기적 생명력 조명
- 이타주의의 경제학: 자연계의 협력은 순수한 도덕이 아니라, 수십억 년 동안 진화가 찾아낸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라는 점
2장: 문제적 동물, 호모 사피엔스
2장에서는 지구 역사상 가장 젊은 종이면서 가장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류의 자화상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 이야기와 협력의 생존 무기: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수많은 호모 종 중에서 오직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은 이유는 뛰어난 신체 능력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하며 대규모로 협력하는 능력에 있었다.
- 막내의 오만과 파괴: 지구 46억 년 역사 중 고작 30만 년을 머물렀음에도 털매머드와 도도새 등 수많은 생명의 종을 멸종시킨 역설을 지적한다. 저자는 "막내에게 가족을 죽일 권리는 없다"라며 인간 중심적 사고의 폭력성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 제돌이와 남방 큰 돌고래의 교훈: 인간이 돈벌이를 위해 야생의 동물을 수족관에 가두고 쇼를 시켰던 폭력성을 고발한다. 대표적으로 제주 앞바다에서 불법 포획되어 서울대공원에서 쇼를 하다가 최재천 교수를 비롯한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다시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 큰 돌고래 '제돌이'의 일화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자연으로 돌아간 제돌이가 무리와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은, 생명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 자연계의 은유, 잎꾼개미의 인생 이모작: 늙은 일개미가 톱날이 무뎌져도 퇴물이 되지 않고 나뭇잎 운반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듯, 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인류 역시 구성원 각자에게 적합한 역할을 찾아주는 공생적 사회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3장: 진화는 도박을 하고, 질병은 우리와 함께 진화한다
많은 이들이 진화론을 오해하여 '진화는 언제나 더 완벽하고 우수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라고 믿는다. 그러나 "진화도 때로는 도박을 한다"라고 과감히 말한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무모해 보이는 선택을 하는 것이 진화의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질병 또한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인류와 발맞추어 함께 진화해 온 동반자라는 시선을 제시한다. 바이러스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박멸'하겠다는 현대 의학의 오만함에 일침을 가하며 진화의 섭리를 되짚는다.
4장: 팬데믹과 기후 변화, 인간이 멈추자 자연이 되살아났다
책의 핵심 축 중 하나인 4장에서 저자는 인류를 강타한 감염병과 기후 위기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룬다.
- 초연결 사회와 바이러스의 역습: 전 세계가 촘촘한 물류망으로 연결되면서, 인간이 열대우림 등 자연의 경계선을 무분별하게 침범한 결과 야생의 바이러스가 가공할 재앙으로 돌변했다.
- 봉쇄 기간의 아이러니: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인간의 이동이 멈추자 도심 속으로 야생동물이 돌아오고 대기 질이 개선되었던 현상은 "인간이 멈추자 자연이 되살아났다"는 명백한 증거이자 경고였다.
- 화학 백신보다 강한 생태 백신: 무조건적인 소탕과 치료에만 매몰되지 않고, 서식지 보존과 생물다양성 유지를 통한 '생태 백신'만이 유일한 방패임을 강조한다.
5장: AI 시대와 공생의 미래를 위하여
세계적인 생태학자로서 평생 야생을 관찰해 온 저자의 시선은 책의 결말부에서 현대의 첨단 기술 사회로 확장된다. 기후 위기와 팬데믹을 넘어, 다가오는 인공지능(AI) 시대와 언택트 환경이 인류에게 또 다른 거대한 진화의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경고한다.
- 전술 국가에서 전략 국가로: 단기적인 성과와 기술 패권에 집착하는 전술적 사고에서 벗어나, 장기적 공존을 설계하는 국가적·사회적 전략 전환의 필요성
- 차별과 혐오를 넘어 연대: 디지털 고립과 AI가 부추기는 파편화 속에서, 결국 살아남는 종은 기술이 아니라 가장 강력하게 연대하고 협력한 집단이라는 경종
생태계 균형 회복과 공존,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
거창한 국가적 담론이나 과학 기술을 기다리기 전에, 개인이 즉각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생태적 행동은 무엇일까?
- 육류 소비의 의식적 감축: 야생 동물 서식지 파괴와 바이러스 확산의 주요 원인인 공장식 축산과 사료용 농경지 확대를 막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이틀 고기 없는 식단 실천하기
- 생태적 감수성을 반영한 지갑 투표: 생산부터 폐기까지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환경을 고려하는 친환경 기업과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 요점: 결국은 '관계와 연결'이다
《히스토리아 비테이》를 관통하는 최재천 교수의 최종 메시지는 명확하다. 인류가 생존하는 유일한 길은 자연과의 '정복과 지배' 관계를 청산하고, 철저한 '상생과 공존의 네트워크'로 회귀하는 것이다. 지구의 46억 년 역사가 단 한 번도 독점적 지배자의 편에 서서 영원했던 적이 없음을 상기하며, 자연을 지키는 일이 곧 우리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책임을 역설한다.
독자적 시각 및 마무리
최재천 교수의 통섭적 시도는 경이롭지만, 한편으로 자본과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초고속 AI 시대의 모순을 자연계의 순리만으로 온전히 풀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물음표를 던져보게 된다. 자연의 섭리는 순환하지만, 인간의 경제 시스템은 멈추는 순간 파국을 맞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생태적 지혜를 디지털 자본주의 시스템 안으로 어떻게 이식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적 설계는 온전히 남겨진 숙제다.
자연은 인간의 손에 의해 정복당하거나 조율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기생하고 있는 거대한 시스템 그 자체다.
여러분은 팬데믹의 상처와 AI 위협이 공존하는 이 시대에, 최재천 교수가 전하는 생태계의 '공존과 협력' 법칙을 일상과 업무 속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