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아침, 무심코 거울 앞에 섰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눈가에 자글자글하게 자리를 잡은 주름과 예전보다 푹 꺼진 볼살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 시절에는 며칠 밤을 새워도 툭툭 털고 일어났으나, 이제는 조금만 무리해도 며칠씩 피로가 이어진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몸소 느낄 때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이별을 하나둘 경험할 때마다 알 수 없는 무기력감과 상실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 가져오는 외로움과 어두운 그림자는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어 답답해하던 시기에 책장 한구석에서 만난 책이 바로 메리 파이퍼의 《나는 내 인생이 참 좋다》였다.
1. 쇠락과 상실감 속에서 마주한 내면의 무기력
한 곳에서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이어오면서 나름대로 치열하고 가치 있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5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몸과 마음의 변화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찾아왔다.
건강검진 결과지에 하나둘 늘어가는 주의 수치들, 옛 동료들의 은퇴 소식, 그리고 가깝게 지내던 이들과의 영영 피할 수 없는 이별은 마음을 자꾸만 위축되게 만들었다. "이제 내 인생도 내리막길로 접어든 것인가"라는 불안감이 밀려올 때면 저녁 시간에 의미 없이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날이 늘어났다.
아픔과 오해, 그리고 체력적 한계를 마주할 때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날까' 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 굴을 파고 들어가곤 했다.
2. 임상심리학자 메리 파이퍼의 통찰: 고통 속에서 선택하는 빛
임상심리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메리 파이퍼는 《나는 내 인생이 참 좋다》에서 노년과 나이 듦을 단순히 신체적 쇠퇴나 사회적 역할의 상실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기를 생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완성해 나가는 영적 성숙의 과정으로 정의한다.
책을 읽어가던 중 가슴 한구석을 잔잔하게 울린 문장이 있었다.
"우리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만, 고통 속에서도 즐거움과 빛을 선택할 수 있다."
그동안 닥쳐오는 불행이나 몸의 통증, 관계의 갈등을 그저 '빨리 피해 가야 할 장애물'로만 여겼다. 아픔이 전혀 없는 상태만을 온전한 행복이라 믿었기에 조그마한 시련만 찾아와도 삶 전체가 흔들렸다.
작가는 삶의 고통 자체를 아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고통을 어떻게 대하고 그 틈바구니에서 조그마한 낙을 건져 올릴 것인가 하는 '태도의 선택권'은 온전히 내 손에 쥐여 있다고 일깨워 준다. 거울 속 주름을 보며 무기력해하던 삶에 비로소 작은 시선의 전환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3. 영화 《소풍》과 일상의 잔잔한 오버랩
최근에 접하였던 영화 《소풍》의 장면들도 이 책의 메시지와 기가 막히게 겹쳐 보였다. 오랜만에 고향에 모인 친구들이 늙어가는 육체와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서로의 손을 꼭 맞잡아주는 모습이었다.
노년이 되면 피할 수 없는 외로움과 몸의 고통이 가득하지만, 친구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옛이야기를 나누고 씩 웃어 보일 때 그 미소는 늙음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의 찬란함을 증명해 내었다. 삶의 진짜 아름다움은 완벽하게 짜인 결과가 아니라 '기꺼이 버티고 견뎌내는 하루하루' 그 자체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4. 일상에서 실천하는 3가지 회복력 전략
책과 영화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 회복력을 기르기 위한 세 가지 다짐을 세웠다.
| 1. 매일 다른 하늘 보며 리셋하기 | 늦은 밤 피곤하게 귀가하는 길에도 매일 다르게 트이는 하늘을 보며 내면의 먼지를 한 번씩 털어낸다. |
| 2. 소소한 일상의 기쁨 재발견 | 먼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따뜻한 찻잔의 온기나 가족과의 소소한 대화 등 지금 순간의 맛을 건져 올린다. |
| 3. 완벽하지 않은 삶을 포용하기 | 인생의 변수와 어두운 순간마저 내 삶의 도화지를 한층 더 깊게 만드는 명암으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
5. 《나는 내 인생이 참 좋다》를 추천하며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 나이 먹어가는 몸과 마음의 변화로 문득 무기력함이 찾아오는 이
- 삶의 시련이나 상실 앞에서 자꾸 남 탓을 하거나 무기력해지는 독자
- 노년의 삶을 따뜻하고 품위 있게 바라보고 싶은 이
노년이란 지나간 날을 아쉬워하며 저물어가는 시간이 아니다. 매 순간 불쑥 찾아오는 소소한 기쁨을 알아채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활기찬 여정이다.
오늘도 삐걱거리는 일상 속에서 저마다의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이 가만히 등을 쓸어내려 주는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참 잘 살았다, 내 인생이 이만하면 꽤 좋다"라는 고백을 조용히 남길 수 있기를 깊이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