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가다 보면 문득문득 다가올 앞날이 막막해질 때가 있다.
"내일 주식 시장은 또 변동이 있을까"
"이번 주 이달 실적은 달성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커 가는데 벌어서 얼마큼 지원을 해 주어야지 아이들의 미래를 도와줄 수 있을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런 궁금증들은 늘 우리를 짓누르며 묘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만들어낸다. 만약 영화 속 장면처럼 누군가 나타나 우리의 미래를 100% 오차 없이 맞혀준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홀가분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의 저서 《열두 발자국》은 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날카로운 물음에 대해 뇌과학의 언어로 따뜻한 위로와 해답을 건네준다.
1. 뇌가 유독 미래를 알려고 안달인 이유
- 생존을 위한 뇌의 본능: 우리 조상들이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건 다름 아닌 '예측 가능성'이었다. 언제 맹수가 튀어나올지, 언제 먹을 것이 동날지 모르는 상황은 곧 죽음을 뜻했기에 뇌는 어떻게든 데이터를 쥐어짜며 미래를 그리려고 발버둥 쳐왔다.
- 즉, 우리가 앞날을 궁금해하고 불안해하는 건 고장 난 게 아니라 아주 정상적인 생존 본능이다. 뇌는 예측이 어긋날 때마다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뿜어내며 경고등을 켠다. 반대로 상황이 내 손아귀에 있다고 느껴질 때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쉰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래를 전부 내다보는 삶이 마냥 행복할까? 정재승 교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 다 알면 재미없는 삶과 '도파민의 고갈': 우리가 어떤 목표를 향해 달릴 때나 뜻밖의 횡재를 만났을 때 심장이 뛰고 기쁜 이유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때문이다. 이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핵심 조건은 바로 '기대 보상 오차'에 있다.
-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실제 결과가 훨씬 근사할 때, 혹은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마주했을 때 뇌는 엄청난 쾌감을 느낀다.
- 만약 미래가 완전히 스포일러처럼 정해져 있어서 내가 몇 살에 승진하고 언제 어떤 성공을 거둘지 다 알고 있다면 어떨까? 기대와 현실의 오차가 '제로(0)'가 되어버린다. 뇌는 더 이상 새로운 자극을 느끼지 못하고, 삶의 의욕과 도파민이 바닥나면서 깊은 무기력의 늪에 빠지게 된다.
2. 일상에 써먹는 뇌과학 단어들
- 코르티솔: 발등에 불이 떨어졌거나 막막한 상황에서 솟구치는 스트레스 호르몬. 중요한 발표를 코앞에 두고 심장이 쿵쾅거리거나 연락이 안 되는 아이 때문에 손에 땀이 쥘 때 몸이 반응하는 그 물질이다.
- 도파민: 삶의 의욕과 소소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고마운 보상 호르몬. 기대도 안 한 시험에서 턱 하니 합격하거나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인생 맛집일 때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기쁨이다.
- 뇌의 회복탄력성: 엉뚱한 변수를 만나거나 일이 꼬였을 때, 뇌가 스스로 유연하게 방향을 틀어 새로운 답을 찾아내는 힘. 처음엔 당황스러워도 시간이 지나며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내는 그 신기한 적응력이다.
3. 막막할 때 뇌를 괴롭히지 않는 의사결정 법
정재승 교수는 앞이 안 캄캄한 세상에서 뇌가 덜 지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준다.
- 정보는 적당히 끊어내기: 알라딘 책 검색하듯 정보를 너무 파고들면 오히려 뇌가 과부하에 걸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분석 마비'에 빠진다. 딱 필요한 선까지만 알아보고 멈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 완벽한 선택이라는 환상 지우기: 세상에 100%짜리 완벽한 선택지는 없다. 중요한 건 어떤 길을 골랐느냐가 아니라, 내가 고른 그 길을 내 손으로 묵묵히 괜찮은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후속 작업이다.
- 중요한 순간엔 숨부터 고르기: 덜컥 겁을 집어먹는 감정적인 뇌를 진정시키고 이성적인 뇌가 일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리기 전 10초만 깊게 숨을 골라보자.
- 비상구(플랜 B) 하나쯤 품어두기: 만약을 위한 대비책을 쥐고 있으면 뇌는 상황을 끔찍한 위험이 아니라 '한 판 해볼 만한 게임'으로 받아들여 불안감이 뚝 떨어진다.
4. 일상 속 불안을 덜어내고 뇌를 다독이는 습관
- 손에 닿는 '오늘 하루'에만 집중하기: 5년 뒤, 10년 뒤 먹고살 걱정을 미리이고 지고 살면 뇌는 늘 비상사태다. 그 대신 "오늘 물 두 잔 꼭 마시기", *"오늘 책 몇 페이지 읽기"*처럼 지금 당장 내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아주 소소한 과제에 집중하자. 뇌에 칭찬 도장을 찍듯 작은 도파민을 채워줄 수 있다.
- 계획대로 안 풀려도 그냥 받아들이기: 인생이 내 뜻대로만 굴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가끔은 엉뚱한 변수나 예상치 못한 일탈을 '오늘의 작은 이벤트'로 즐겨보는 여유도 나쁘지 않다.
- 실패를 데이터로 여기기: 일이 뜻대로 안 풀렸을 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자책하기보다 "아,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소중한 데이터를 하나 얻었네" 하고 넘기는 태도가 뇌를 훨씬 건강하게 만든다.
머릿속을 스치는 질문들 (Q&A)
- Q.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할 때 당장 마음을 가라앉히는 뇌과학적 팁이 있나요?
- A. 가장 빠른 건 깊은 복식호흡이다. 숨을 천천히 길게 내쉬는 것만으로도 우리 몸의 부교감신경이 깨어나면서 뇌에게 "자, 이제 안전해"라는 신호를 보내고, 코르티솔 분비를 곧바로 낮춰준다.
- Q. 매일 똑같이 사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변화를 주는 게 나을까요?
- A. 뇌가 가장 좋아하는 비율은 '익숙한 일상 80%'에 '신선한 자극 20%'가 섞였을 때다. 평소엔 묵묵히 루틴을 지키되, 주말에는 안 가본 동네를 산책하거나 새로운 장르의 책을 펼쳐보는 작은 변화가 뇌를 반짝이게 만든다.
마무리하며: 불확실함이라는 이름의 도화지
아이들을 키우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문득 "우리 애들이 앞으로 거친 세상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묵직한 걱정이 밀려올 때가 있다.
하지만 정재승 교수님의 책을 덮으며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앞날을 알 수 없고 불확실하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우리 아이들의 앞길에 정해진 한계가 아니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펼쳐져 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미리 길을 닦아놓고 웅덩이를 다 메워주면 아이 뇌가 스스로 일어설 힘을 기를 기회를 빼앗는 셈이다. 결과가 조금 아쉬워도 "과정 속에서 이렇게 고민해 본 게 참 멋지다"라고 다독여줄 때, 아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도파민을 내뿜으며 부딪혀볼 줄 아는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날 것이다.
어차피 정답이 없는 인생이라면, 내일 일을 미리 당겨서 걱정하느라 오늘을 갉아먹을 필요는 전혀 없다. 오늘 내게 주어진 이 소소하고 평범한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다. 불확실성이라는 하얀 도화지 위에 저마다의 색깔로 근사한 그림을 그려나가는 마법 같은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