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동욱 교수의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는 철학의 역할을 추상적 사변에서 실존적 효용성으로 전이시키며
추상적 사변에서 실존적 효용성으로 전이시키며, 현대인에게 닥친 '삶의 버거운 결말'앞에서 사유가
발휘하는 윤리적 힘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철학 에세이이다.
철학적 지식을 삶의 기술로 치환하는 실천주의적 접근을 통해, 독자들에게 정해진 운명이라는 체념을 넘어
결말의 초안을 직접 수정할 주체적 능력을 부여한다.
1. 논제:철학의 역할 재정립과 실존적 효용성
플라톤 이래 철학이 추구해 온 죽음을 위한 연습이라는 관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철학의 궁극적 목표를
'삶을 위한 실천적 기술'로 재정립한다.
●결말의 수사학적 전환:
책의 제목처럼, 철학은 외부에 의해 결정된 듯 보이는 운명론적 결말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대신, 주체적인 선언과
사유를 통해 그 결말이 논리를 전복시키ㄴ다. 에피쿠로스가 고통스러운 사형 앞에서 평정심을 선언하고, 소크라테스가
사형 앞에서 영혼 불멸을 증언했듯이, 철학은 현실적 한계를 초월하여 자신의 삶에 최종적인 윤리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입니다.
●지적 지렛대로서의 사유:
이 도서는 책을 읽는 이들에게 사유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인식적 통제력을 회복하도록 촉구한다.
외부의 조건에 끌려 다니는 수동적인 실존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지적 지렛대'로서 철학의 실질적인 효용성을
입증해 준다.
2. 실존적 동력: '실망'의 인식론적 전복
이 책에서의 '실망'이라는 경험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을 넘어, 철학적 사 유이 시발점이자 실존적 성장의 동력으로
기능한다.
●인식적 전복
실망은 우리가 가진 기대와 믿음, 가정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강력한 경험이다.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할 때는
사유가 불필요하지만 이 '의혹'과 '불확실성'이 제기될 때, 우리는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철학적 탐구를 시작한다.
●유한성 인식과 책임
실망은 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통제 범위의 유한성'을 자각하게 한다. 이 유한성의 인식이 곧 겸손함과 정확한
상황 판단을 낳으며, 다음번에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주체적 책임으로 이어졌다. 이는 실존주의에서
강조하는 '선택과 책임'의 윤리와 맞닿아 있었다.
3. 일상의 재구성: '쾌락'과 '자유'의 윤리학
쾌락, 먹기, 질투와 같은 일상적 경험들을 철학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여, 철학이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
적용됨을 보여주고 있다.
●아타락시아와 이성적 쾌락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통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쾌락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윤리임을 제시한다.
미래의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이성적 쾌락을 선택하는 능력은 곧 욕망을 통제하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삶의 기술이다.
●행위의 실존적 의미
'먹기'와 같은 본능적 행위조차 무엇을, 누구와 먹을지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의 자유 의지가 실현되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실존적 의미를 부여받았다. 철학은 일상 속에 숨겨진 선택의 힘을
명료하게 드러내었다.
4. 결론 :결말을 사유하는 자의 주권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는 책을 읽는 우리에게 철학적 지식을 습득하라고 강요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능동적으로 응답하는 훈련을 촉구하였다.
이 책은 삶의 결말은 운명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사유와 선택에 의해 새롭게 쓰인다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였다. 철학을 통해 자신의 결말을 스스로 통제하고, 소진된 일상을 능동적인 삶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본격적인 실천철학의 교과서로서의 가치를 지녔다.
나는 삶의 결말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로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능동적인 선택자가 되어서 타인의 기대, 사회의 요구 혹은 과거에 습관에 끌려 다니는 수동적인 실존을 벗어나기가
우선인 것 같다. 어떤 가치에 무게를 두느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스스로 명확하게 결정하여야 한다.
책임을 포용하여야 한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름을 안다.
내가 내린 모든 결정 와 그 결과에 기꺼이 책임을 져야지만이 비로소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됨을 깨달았다.
이 책임감이 바로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바로 꾸준함의 힘이라고 믿는다.
1% 성장의 법칙을 믿고 매일 1%씩이라도 꾸준히 나아가는 자세
작은 거부터 실천하는 나로 다시 마주 할 것이다.